대선 승리가 한국 민주주의의 승리는 아니다
제21대 대선이 내란세력의 패배로 마무리됐다. 양당 정치의 극한 대립이 초래한 12.3 내란의 혼란 속에서 지난 6개월간 광장을 통해 표출된 시민들의 다양한 요구를 제대로 갈무리하고 ‘다당제 연합정치’를 제도화하는 것이 이재명 정권의 정치적 과제이다.
한국의 시민사회는 오랫동안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요구해 왔다. 1표라도 많이 얻은 자가 모든 권력을 독점하는 단순다수제, 즉 소선거구제 폐지를 통한 ‘사표 방지, 표의 등가성’ 실현, 정당 득표율과 의석 비율이 일치하는 ‘비례성’의 확보, 지역주의 극복과 다양한 정치세력의 등장을 실현할 수 있는 ‘중대선거구제’의 도입 등이 주요과제로 제시되었다.
정의당·녹색당 등 군소 정당의 요구로 2020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됐지만, 거대 양당은 지난 2차례의 총선에서 ‘위성 정당’을 만들어 비례대표 의석마저 독차지했다. 북한·중국·베트남 등 일당독재국가에서 소위 ‘우당(친구당)’이라 불리는 허수아비 정당을 동원하여 민주주의를 가장하는 행태와 다를 바가 없다. 이는 비례성·등가성·민주성이라는 선거법의 원칙을 훼손하고 정당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반민주적 행태였다.
양당제는 승자독식의 대결정치,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부른다
‘양당제’는 정치적 책임소재가 양대 정당에 국한되어, 명확하고 강력한 실행력을 발휘할 수 있어 정치적 안정성을 가져다준다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승자독식의 정치, 양당제가 가져오는 사회적 폐해는 너무나 크다.
우선, 승자독식의 규칙에 기반한 ‘양당제’에서는 집권당이 권력을 독점함으로써 야당은 철저하게 배제된다. 정당 간의 사생결단식 정치투쟁이 치열해지고 정치 양극화가 발생한다. 선거 때마다 정당이 이름을 바꾸고 정치인들은 상대방을 비난하고 공격하면서 혐오와 대결의 문화를 키운다. 정책 경쟁보다 인신공격과 네거티브 캠페인이 극성을 부리면서, 정치적 효능감이 극도로 낮아진 유권자의 정치불신은 커져만 간다.
또한 ‘양당제’는 노동자, 빈곤층, 소수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의 출현을 막음으로써 국민의 선택권을 제한할 뿐 아니라, 빈곤층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지 정치가 작동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정치적 발언권이 없는 저소득층과 노동자를 대변하지 않는 국회의원은 기업의 로비에 쉽게 매수되어 대기업과 부유층 세금을 낮추고, 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의료와 교육 등 공공 서비스를 시장화하는 정책을 통해 기업의 막대한 수익을 보장한다. 거대 양당의 정치독점이 지배한 지난 수십년 동안 한국사회의 경제·사회적 불평등은 급속하게 심화됐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과 노인 빈곤율, 사교육비 지출의 반대편에 세계 최저 수준의 출생률, 최악의 사회적 신뢰도가 자리잡으면서 ‘불평등 공화국’이라는 오명과 함께 공동체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
2023년 1월 <뉴스토마토>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52.3%는 “다당제 구도로 전환해야 한다.” 고 답했다. (출처 : 2023.1.13. <뉴스토마토>)
다당제는 대화와 타협, 약자 존중과 재분배의 정치로 이어진다
프랑스의 정치학자 모리스 뒤베르제는 “소선거구제(총선)와 결선투표 없는 단순다수제(대선)는 양당제를 부르고, 중대선거구제·비례대표제(총선)와 결선투표제(대선)는 다당제를 낳는다.”는 ‘뒤베르제 법칙’을 주장했다. 실제로 단순다수제를 채택한 미국, 한국 등에서는 거대 양당 정치가, 비례대표제를 도입한 유럽 국가에서는 다당제와 연합정치가 보편적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양당제와 다당제가 만들어낸 사회·정치적 결과일 것이다. 여러 정치학자들은 ‘승자독식의 양당제 정치보다 권력을 공유하는 다당제 연합정치에서 민주주의의 성과가 우수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 이유는 ‘하나의 정당이 전체 국민을 대변할 수 있다.’는 사고는 전체주의와 독재로 흐르기 쉽기 때문이고, 그 역사적 실례는 독일의 나치나 소련의 스탈린, 가까이는 북한 체제 등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다당제 연합정치를 위한 비례대표제를 채택한 유럽의 빈곤과 불평등 수준이 오랜 기간 양당제를 시행해 온 미국에 비해 현저히 낮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다당제가 양당제보다는 다양한 시민의 요구를 적절하고 효과적으로 반영하는 제도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주목할 지점은 지난 수십 년간 양당제를 통해 교대로 집권을 해온 민주당과 국민의힘 계열의 정당들은 예외없이 ‘모든 국민을 위한 정당’ 혹은 ‘국민 통합정당’임을 자임하며 시민들에게 단독집권을 위한 지지를 호소해 왔다는 점이다. 다양한 사회적 요구를 대변하는 군소정당이 등장하면 “저 당을 찍으면 당신의 표가 사표가 된다.” 거나 “그 당을 찍으면 반대당이 집권한다.”는 협박을 통해 시민들에게 원치 않는 선택을 강요해 왔다. ‘전면적 비례대표제 도입’을 통해 다당제를 실현하고 정당간 연합과 갈등조정을 통해 다양한 시민의 요구를 최대한 실현하려고 노력하면 될 일이다. 그것이 다원화된 사회의 진정한 민주주의 실현 방법이다. 민주주의는 다원화된 시민들의 요구를 대변하는 다양한 정당들이 서로 경쟁하고, 협상하고, 합의하면서 사회와 국가를 운영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다당제는 원치도 않는 거대 양당의 정치적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지 않고, 자신의 사회적 권리와 정치적 의사를 대변할 정당을 민주주의의 광장에 내보낼 수 있는 필수조건이다. 양당제 대결정치의 최악의 결과물인 12.3 내란을 고통스럽게 겪어낸 한국정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명확하다. 비례대표제·중대선거구제·결선투표제의 전면 도입을 통한 다당제의 실현이 바로 그것이다. ‘다당제 연합정치’를 실현하려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노력을 하는 정치세력만이 진정한 민주주의자라 불릴 자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