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왕규식
독자 여러분의 2022년은 어떠했습니까? 저는 마음이 묵직한 한 해였습니다. 웃음도 많이 잃었습니다. 마음을 누르는 것은 개인사보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 더 구체적으로는 윤석열 정부의 행태에서 비롯된 것이라 그 무게를 걷어내기가 쉽지 않네요.
추모도 제대로 못 한 10.29 참사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소식을 듣고 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20대인 아들 딸의 행방을 묻는 것이었습니다. 이태원에 가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안도 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 생각에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내 자식들이 그 자리에 있었을 수 있다는 생각에 몸서리쳐졌습니다. 차마 현장 영상이나 뉴스 영상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며칠을 멍하게 보냈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자식 같은 청년들 넋이라도 위로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정부에서 정한 추모기간은 끝이 나 있었습니다. 어디서 누구를 추모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희생자의 아름도, 사연도 모르는 깜깜이입니다. 이런 대형 사회 참사에 추모공간도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이태원역 1번 출구에라도 국화꽃 한 송이 놓을 수밖에 없네요. 그래서 더 마음이 무겁습니다. 이태원에서 천 리나 떨어진 하동에 사는 농부의 마음도 이런데, 희생자 가족이나 이웃분들 마음은 어떨까요.
독재의 기억
추모 기간을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위패도 없는 추모 방식을 지정해주는 정부를 보면서 ‘독재’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추모도 슬픔도 정부의 지침대로 해야 하다니요. 80년대 군사독재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전두환시절엔 ‘북한’이 독재의 빌미였고, 지금은 ‘국익’이 명분 같습니다. 수많은 책을 ‘불온서적’이라 하여 읽지 못하게 하고, 정부를 비판하면 ‘빨갱이’로 매도했던, 무려 40년 전 기억이 요즘 고스란히 되살아납니다. 대통령이 ‘이 새끼들’이라고 말한 것을 보도하니 ‘국익’을 해친다며 언론 기관을 몰아세우는 모습은 거침이 없습니다.
걱정스러운 건 기성세대에겐 ‘일방주의’가 익숙하다는 것입니다. 익숙한 게 다시 나타나면 편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법이죠. 토론과 합의를 통해 집단지성이 발현되는 사회가 되기보다 상명하복의 일방주의가 자리잡을 수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습니다.
하동은 젊은층보다 장년층, 노년층이 압도적인 농촌사회로 기성세대가 주를 이룹니다. 그러다보니 일방주의를 쉽게 생각하는 모습도 있습니다. 윤상기 군수 시절 확대간부회의라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군수가 간부공무원에게 ‘지랄하네. 지랄해’라는 말을 했다는 언론보도를 보고 너무나도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그런 말을 공식 회의에서 할 수 있을까? 그런 말이 용납되는 것은 ‘일방주의’가 얼마나 강한지 반증하는 것이었습니다. 군수의 행태에 하동에 사는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2022년. 이번 겨울에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힘이 결정될 것 같습니다. ‘일방주의냐 민주주의냐’ 이 기로에 따라 우리네 삶도 크게 영향 받을 것 같습니다. 일방주의가 강한 시절로 돌아간다면, 참담할 것 같습니다. 민주주의가 퇴행하지 않도록 정신 바짝 차려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