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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악앙골 매상 날 풍경

지난 일 년 동안 농민들이 자식처럼 돌보며 키운 벼나락이 농민의 품을 떠나기 시작했다. 경남 하동군 악양면에서는 지난 11월 24일부터 벼매상이 시작됐다. 농민 입장에서야 벼나락을 파는 날이니까 매상날이고 나락을 사들이는 정부입장에서는 수매하는 날이다.
악양의 첫 매상이 이루어지는 봉대리의 봉대농협 창고 앞. 창고 앞마당에는 전날 갖다 놓은 톤백 자루들이 줄지어 놓여 있다. 이른 아침 농민과 농협, 면사무소 직원들이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다. 일부는 톤백자루를 덮어놓은 비닐 덮개를 벗기는 동안 일부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곳으로 모여들었다. 이날 악양면의 한 단체인 청목회에서 어묵과 커피를 제공했다.
화개악양농협 창고에서 나락 수매 중인 농민들
매상날은 농민이 아니어도 마을일에 관심 있는 지역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날이다. 하나 둘 모여든 사람들이 한해 농사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요즘 매상날엔 이장 안 나와! 옛날엔 다 나왔어.” 하더니 톤백 싣고 들어오는 트럭을 보며 “8시 넘으면 받지 마?”하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그러다 “공산품 가격 오르는 건 뭐라 안하고 왜 농산물 가격만 내리냐? 농민들 엿 먹이는 거지.” 하는 말이 나오자 “엿 좋지. 달달하지.” 하고 한바탕 웃었다. “못 배운 게 한이지. 농민이 힘을 못 써.” 그러자 “농민 괄시 말어. 선조들이 농사지어 먹고 살았잖아. 우리도 그렇게 사는 거야.”하다가 “내년엔 다른 품종 심어 봐야겠어. 3년 째 같은 거 심으니까 논이 삐어지는 거 같아.”하다가 “가을인데 살 좀 쪄라.” 하는데 “여기 톤백 쟈크 열어주세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느 덧 매상하러 온 나락의 등급을 메기기 시작한 것이다. 톤백자루에 들어 있는 나락을 꺼내 상태를 살피던 박상영(농산물품질관리원)씨는 등급을 매기는 기준이 중량을 제대로 달았는지, 수분은 13-15%로 적당한지를 본다면서 그 외에도 나락을 깨끗하게 거두었는지, 알이 통통한지, 청미가 없는지 등을 살핀다면서 특등에서 3등급까지 등급을 준다고 설명했다.
이날 갖고 온 톤백의 대부분을 특으로 받은 서정부(76세) 농민은 50년 넘도록 평사리들판에서 농사를 지어왔다면서 “특을 받으면 아무래도 돈을 더 받으니까 기분이 좋다.”면서 예전 농사지을 때를 회상 했다. “옛날에는 산 밑으로 모두 논자락이라 벼 심었지. 마을 마다 40 –50명 넘게 나와 매상했지. 마을마다 창고가 있고. 그 땐 정말 대단했어. 그 때 비교하면 3분의 1도 안 돼. 그래도 벼농사가 좋아. 아들이 드론으로 약치는 것도 도와줘. 아쉬운 건 가격이 미리 좀 나오면 좋겠어. 돈도 한꺼번에 주면 좋을텐데. 나눠주면 자꾸 푼돈으로 써 버리니까. 그래도 벼농사가 좋지.” 하고 말했다. 옆에 있던 이상춘(74세) 씨 역시 “다른 작물을 해 봤지만 그래도 벼농사가 제일이야.”하고 거들었다. 50년 넘은 벼농사의 전문가답게 두 농민은 종자 값 줄이는 비법을 알려줬다. 9백 평 1천 평이 넘는 논에 수천상자의 모를 써야 하는데. 그 종자를 해마다 사서 써서는 안 된다는 것. 그러니 종자로 쓸 나락 만들려면 콤바인 청소를 미리 잘 해서 잡품종 섞이지 않게 받고. 말릴 때도 건조기 저온 바람으로 하는 등의 비법을 알려주었다.
그 때 포대를 바꾸어야 한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루 구멍을 테이프로 붙인 것은 안 된다며 자루 바꾸는 소리가 들릴 때 이미 특 등급을 받은 이문순(63) 농민은 “힘들게 일했는데 이제 돈 들어올 일만 남았다.”며 한 해 동안 겪어온 논과 벼와의 힘들었지만 뿌듯했던 시간을 툴툴 털어냈다.
창고 앞마당으로 온 톤백들의 등급이 모두 정해지고 나락 담긴 톤백들이 지게차에 들려 창고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김회경

동화작가, 지리산학교 글쓰기반 강사, 악양면 덕기마을 주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