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갈사만 바깥섬의 바위에 새겨진 ‘가시’이다.
김미희
양보면
가 시
마음에 돋힌
가시를 뽑는 일은
풀꽃 보며
풀 사이 걷기
새소리에
말 걸기
어제 나무와
키 재기
바람에게 먼저
걸어가기
작은 냇물에
낙서하기
꽃 옆에서
꽃처럼 웃기
가시
2026년 6월 / 59호
독자기고

기쁜 소식 머리에 이고
뛰어오다가
다리쉼하려 들썩 주저앉는다
몰려오는 졸음 쫓으며
제비꽃
2026년 5월 / 58호
독자기고

악양 하중대 마을 할머니들과 서선희 씨(가운데)
서선희
악양면
나는 경남 하동군 악양면 하중대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내 고향이고, 스무 살까지 나를 키워낸 삶의 터전이다.
40여 년 전 시골은 누군가 일을 시작하면 온 동네가 함께 움직이던 공동체였다. 어린 나 역시 부모님을 따라 들과 산을 오가며 자연스럽게 일을 배웠다. 쑥이 나면 쑥을 캐고, 제철 나물이 나오면 나물을 캤다. 초등학생이던 우리는 방과 후에 모여 “쑥 캐러 가자, 요즘 이거 값이 좋다더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나누었다. 그렇게 우리는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익혔고, 온 동네 어른들과 함께 일하며 자랐다. 어른들은 모두 우리의 부모였고, 우리는 서로의 형제이자 가족이었다. 함께 일하고, 함께 놀고, 밤늦게까지 어울리던 시간은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다.
돌아와서야 알게 된 것들
2026년 4월 / 57호
독자기고
하동 귀촌 3년 차. 시골에서의 삶을 꿈꿔본 적은 없지만 늘 동경하며 막연한 바람으로 남아있던 삶. 갑자기 생겨난 기회에 덥석 이곳으로 내려와 가게를 차리고, 운영하고, 또 일상을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매일 기적같고 신기하다. 첫 1년 차, 하동 생활은 신기함 투성이었다. 마치 아무도 모르는 낯선 해외 어딘가에 떨어진 것만 같았다. 하동만의 시간, 이곳만의 분위기, 이곳만의 문화가 참 귀엽고 낯설었다. 처음 하동살이를 제안해 준 나의 동지 다은 언니 덕분에, 다행히도 하동의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3년 전 막연했던 귀촌인의 삶이 현실로 다가왔을 때, 처음으로 깊이 고민하고 생각해 보았던 현실적인 고충들이 있었다.

인생 첫 ! 하동 축제를 위한 3m 케이크 제작 프로젝트
그중 가장 크게 고민되었던 건 주변 사람들과 환경이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평화로움이야 두말할 것 없이 좋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 태평하진 않을지? 때때로 나태하고 할 것이 없으니 자신만 바라보며 살게 되진 않을까? 그곳에서 나는 어떠한 발전도, 경쟁도 없이 젊은 나이를 허송세월하며 살게 되면 어쩌지? 너무 편하고 좋을 것 같지만 그게 맞을까? 하는 고민이 가장 컸었다. 서울 경기권에서 평생을 살며 치열함과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일상들은 늘 싫었지만, 그렇다고 아예 놓아버리는 것도 싫었다.
보장된 일자리와 삶이 있었기에 일단 가보기로 마음을 먹고 언니를 통해 만나본 사람들의 삶을 보며 충격을 받았다. 아! 이렇게나 건강한 마음가짐과 자세로 삶을 받아들일 수 있구나. 내가 정말 사랑하는 일을 최선을 다해 사랑하며 사는 삶. 하동살이 1년 차에 느꼈던 주변 이웃들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결코 나태하지도 자만하지도 않고, 어떠한 경우에도 사랑하는 일을 한다. 누가 시켜서도, 경쟁해서도 아닌 내가 주체적으로 이끌어가는 삶. 사랑하듯 설계하는 하루일과, 나의 몸과 마음을 위한 음식, 주변의 이웃과 동물들을 향한 따뜻한 관심이 있다. 마치 동물의 숲 현실판과도 같은, 따뜻하고 깊은 동네 하동. 이곳에 정착하길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글을 적으며 나의 모습은 얼마나 나를 위해 열심히 살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누가 뭐래도 나를 사랑하는 삶을 살기. 하동에서는 실현가능하니까.
하동이 주는 하루
2026년 3월 / 56호
독자기고
박홍희
•
악양면
67세, 인생의 고개를 하나둘 넘기며 문득 뒤를 돌아봅니다. 저의 뿌리는 유년 시절의 시골 흙바닥에 닿아 있습니다. 소에게 먹일 풀을 베다 말고 동무들과 뒷동산에서 뛰놀고, 개울에서 물고기를 잡던 그 시절, 저에게 자연은 정보가 아니라 살결로 부딪히는 실재(實在)였습니다.
부산과 서울이라는 치열한 도심을 거치며 살아온 긴 세월 속에서도 그 감각은 늘 마음 한구석에 살아있었습니다. 쉰둘이라는 나이에 안정된 직장을 뒤로 하고 현장에서 거친 육체노동을 자처하며, 백두대간의 능선과 인도, 티베트 카일라스, 히말라야로 배낭을 짊어지고 나를 던졌던 것은 어쩌면 그 실재를 확인하고 싶은 갈망 때문이었을지 모릅니다. 돌이켜보면 그 무모했던 발걸음들이 저에게는 ‘인생의 터닝포인트’라는 소중한 선물이 되었습니다.
물론 제가 걸어온 이 길이 반드시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제가 마주한 지금의 세상은 조금 낯선 풍경입니다. 우리 세대에게 시골은 언젠가 돌아가야 할 마음의 고향이자 뜨거운 로망이었지만, 제가 귀농한 이곳은 어느덧 ‘노인들의 천국’이라 불리는 정체된 공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도시의 젊은이들 또한 각자의 방식으로 분투하고 있음을 압니다. 하지만 객관적인 데이터와 확률을 따지며 ‘손해 보는 일’을 피하려다 보니, 결혼이나 연애처럼 상처 입을 가능성이 있는 관계조차 멀리하는 모습은 안타까움을 자아냅니다.
철학자 베르그송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지금 ‘실제(Real)’를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머릿속 ‘가능성(Possible)’에 갇혀 있습니까? 손가락 하나로 세상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 사람들은 배낭을 메고 오지를 누비며 땀 흘리는 ‘경험’ 대신, 타인이 정제해 놓은 ‘정보’와 ‘확률’로 삶을 재단하곤 합니다. “저 길은 성공할 확률이 낮다.”, “저 선택은 가성비가 떨어진다.”는 냉정한 수치들이 신념의 자리를 대신합니다.
정보의 감옥을 넘어, ‘가지 않은 길’에 숨겨진 인생의 실제(Real)를 찾아서
2026년 2월 /55호
독자기고
김다은, 하동읍

하동읍 브런치 카페 ‘계절열매’ 앞. 김다은 씨(우)와 김예나씨(좌)
여행으로도, 책으로도 경험해 본 적 없던 하동에 어쩌다 오게 되었고, 그렇게 9년째 살고 있다. 누군가 하동의 가장 좋은 점을 말해 보라고 하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섬진강과 지리산, 자연이 다야.” 사람이 감히 따라 할 수 없는 대자연. 그것이 하동이 주는 가장 큰 기쁨이다.
어쩌다 하동
2026년 2월 /55호
독자기고
해마다 연말이 되면 사람들은 저마다의 회한을 안고 한 해를 갈무리합니다. 올해 우리 나이로 여든이 되신 어머니는 요즘 아침마다 산책 겸 저희 집을 찾으십니다. 요양병원에 계신 아버님과 오랜 세월 병마와 싸우는 큰아들을 뒤로하고, 인생의 마지막 여정을 걷고 계신 어머니는 문득 지난날을 돌아보며 나직이 고백하십니다. 젊은 시절 왜 그리 의미 없는 것들에 집착하고, 그 집착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는지 모르겠노라고 말입니다.
어머니의 후회는 비단 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닐 것입니다. 누구나 저마다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긴 인생길을 달려옵니다. 때로는 돈이 전부였고, 때로는 높은 신분이 유일한 목표였던 시간도 있었습니다. 문제는 자신이 전부라고 믿었던 그 ‘꿈’이 타인과 부합하지 않을 때 일어납니다. 우리는 그 꿈을 지킨다는 명목하에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말과 행동을 서슴지 않으며 살아왔습니다.
최근 다녀온 12일간의 라오스 렌터카 여행은 저에게 행복의 본질에 대해 다시금 질문을 던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본래 여행이란 그런 것입니다. 모든 것이 막막하고 희미할 때 길을 떠나면, 생소하고 낯선 길 위에서 지금껏 보지 못한 해답들이 꿈처럼 찾아오곤 합니다.
라오스는 우리가 잊고 살았던 것들을 일깨워주었습니다. 눈부시게 맑은 하늘,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 그리고 수정처럼 투명한 물줄기 너머 언덕에 피어오른 선명한 쌍무지개까지. 그곳은 우리에겐 이미 사라져 버린 것들이 여전히 숨 쉬고 있는 땅이었습니다. 포장되지 않은 흙길 위에서 소, 돼지, 닭이 어우러지고, 그 곁에는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부모와 형제, 가축들이 한집에서 하나 되어 살아가는 모습은 우리가 잊고 있던 본질이 무엇인지를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얼마나 하찮은 일들에 우리의 진정한 꿈과 희망을 저당 잡힌 채 살고 있습니까. 자신의 꿈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며 세상을 삭막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돈, 권력, 명예, 그리고 인조화된 껍데기 속에 진짜 자신을 꼭꼭 묻어둔 채, 급기야 그 껍데기가 자기인 줄 착각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본연의 나를 외계인 보듯 질겁하며 뒷걸음질치는 우리에게 진정한 미래와 행복이 있을지 자문해 보게 됩니다.
집착과 탐욕이 행복으로 포장된 사회에서 우리는 다시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지식과 가식을 내려놓고 자연 앞에 벌거벗은 마음으로 사람들을 마주하고 싶습니다. 서로를 의심하거나 질투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놓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비록 지금의 대한민국이 답을 찾기 힘든 세상이라 할지라도, 저는 메아리 없는 아우성을 멈추지 않으려 합니다.
껍데기의 시대, 우리가 잃어버린 ‘라오스의 미소’를 찾아서
2026년 1월 / 54호
독자기고
12.3내란 1주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오만과 무도함과 반민주의 12.3내란에 맞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려 노력했던 지난 1년의 시간을 돌아보는 시민의 감상을 싣습니다.
<편집자 주>
박홍희
악양면
지금 우리 사회는 상식과 원칙이 무너진 현실을 마주하며 중요한 시험대에 올라 있습니다. 기득권층의 부도덕함과 시민을 속이려는 유혹 속에서, 우리 개개인이 ‘스스로 생각하는 양심의 소리’를 되찾는 것이야말로 탄핵 이후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생각입니다.
기득권층의 부도덕함과 시민을 속이려는 유혹
* 비상식과 부도덕함의 동맹: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사법부, 검찰, 그리고 기득권층의 원칙 없는 부도덕함은 우리 사회가 생각하기를 얼마나 멈췄는지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중요한 문제의 심각성을 부정하는 비상식적인 행태는, 우리가 ‘생각하는 활동’을 멈출 때 윤리적 책임을 얼마나 쉽게 외면할 수 있는지 드러냅니다.
* 법치의 타락: 내란 법정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행동과 끝없는 거짓말은 법치주의의 뿌리를 흔듭니다. 진실을 밝혀야 할 의무를 저버린 이들의 행위는 기득권 집단의 부도덕함이 시스템속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 시스템의 오만: 법과 종교마저 타락하는 모습은, 기득권의 오만함이 결국 우리 모두의 상식과 원칙을 무너뜨리고 있음을 상징합니다.
생각하는 양심이 무너진 시대, 우리의 가장 중요한 과제
2025년 12월 / 53호
독자기고
지난 7월 수해로 큰 피해를 입은 옥종 딸기하우스 농장의 허선옥 씨가 수해복구를 도와준 자원봉사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편지를 정성껏 손글씨로 써서 보내왔다. <편집자 주>

어느 날 비가 장대같이 쏟아졌습니다. 우린 하우스가 강 옆에 있습니다. 강물만 바라보았습니다. 물이 얼마나 찼을까? 그때 시간은 2시 정도, 거의 하천에 80프로 물이 있을 때 하우스로 물이 들어 왔어요. 배고파 뭘 좀 먹자 하는 순간이었어요. 약 2~3분, 하우스 안으로 물이 차기 시작했어요. 어머나! 이게 무슨 일이야? 제가 중얼거리는 말은 “어떡해! 어떡해!”하는 말이었어요. 컴퓨터 하나 들고 있었지만 그땐 정신이 나갔나 봅니다. 방에서 곡식들이 떠밀려 나오고 신발이 둥둥, 하우스를 물이 천정까지 메우더니 앞집 모종밭으로 물살이 밀려 들어갔어요. 조금 높은 곳에선 이장님이 “빨리 나오라.”고 소리쳤어요. 그 말은 들리지 않고 떠나가는 살림살이만 바라볼 뿐. 물이 가슴까지 들어오니 ‘아, 이제 나가야 하는구나.’ 싶어졌어요. 나와서 보니 하우스 꼭대기까지 물이 차 있었고 들판이 바다
처럼 보였어요. 아주 어렸을 때, 사라호 태풍을 본 다음, 두 번째 물난리인 것 같았어요.
옥종면 종화마을을 찾아주신 수해봉사자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드
립니다. 종화마을에 살고 있는 허선옥이라고 합니다. 저는 죽어도 잊지 못할 봉사자분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싶습니다. 진흙 때문에 딸기 한 동을 포기를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봉사자분들께서 3주를 오셔서 10cm나 되는 흙을 말끔히 치워주셔서 딸기를 심었습니다. 저는요, ‘이런 분들이 과연 몇 분이나 계실까?’ 생각을 합니다. 한분 한분께 큰절이라도 하고 싶습니다. 너무 고맙고 감사합니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기어다니면서 흙을 자루에 집어넣고 한 자루가 되면 밖으로 보내고, 어느 누가 이런 고된 일을 할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행운아인 것 같아요. 누구나 ‘봉사하시는 분은 봉사자일 뿐이다.’ 생각을 하시겠지만 입장을 바꾸어 보면 과연 나는 그렇게 할 수가 있을까 생각을 해 봅니다. 정말 고맙고 감사합니다. 꼭 한번 뵙고 싶습니다.
[독자기고]한국의 쓰나미
2025년 11월 / 52호
독자기고
도시에서 생활한 지 30년 만에 시골로 돌아왔습니다. 도시에 살 때 시골로 가게 되면 닭 몇 마리를 키워서 달걀도 먹고 싶었고, 동화책에서처럼 병아리를 몰고 다니며 먹이를 찾아주는 어미닭의 부지런한 모습을 바라보는 상상을 했었습니다.

하동으로 귀농한 뒤 곧바로 닭장을 짓고 어린 토종닭 10마리를 입양했는데 소망을 이루기는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마을과 떨어진 독립 가옥에서 기르는 닭은 야생 짐승의 좋은 먹이였습니다. 쪽제비, 삵, 담비, 너구리, 쥐, 뱀... 그리고 동네 개들까지 닭을 공격했습니다. 닭장을 몇 차례에 걸쳐 튼튼하게 고쳐짓고 외부에 다시 울타리를 한 번 더 설치하고 나서야 안정적으로 닭을 기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루 중 4시간은 자연방사를 하는데, 지금도 가끔 한 마리씩 사라지기는 합니다. 지금은 두 마리의 수탉과 여섯 마리의 암탉이 있습니다. 수탉은 근친교배를 막기 위해 종 교환을 하는데. 암탉은 그냥 키우다 보니 평균 나이가 너덧 살은 되었을 듯 합니다. 달걀은 몇 개 밖에 안 낳지만 닭을 잡기도 싫어 제 수명이 다할 때까지 키우고 저 세상으로 떠나면 과수나무 밑에 고이 묻어 거름이 되게 해 줍니다.
올해 7월 말쯤. 사람으로 치면 70살 가량의 6년 된 늙은 암탉이 병아리를 품는 것 같아 알둥지에서 쫒아냈습니다. 이렇게 무더운 날의 포란은 성공하기도 쉽지 않고 늙은 암탉의 건강도 염려됐기 때문입니다. 쫓아내고 다시 품기를 몇 차례 반복한 후, 이것도 운명이겠거니 생각하고 그냥 두었더니 품고 있는 둥지에 다른 암탉이 알을 계속 낳아 둥지 전체를 다른 곳으로 옮겨 편안한 포란이 되도록 도왔지요.
20일 이상의 인고의 포란 기간이 지나고 부화 예정일인 8월 20일. 아침 일찍 알을 품고 있는 닭장으로 가 상황을 보니, 늙은 어미닭이 둥지를 벗어나 병아리 여덟 마리를 데리고 먹이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둥지 안에는 부화되지 않은 달걀 10개가 남아있었습니다. 토종닭은 덩치가 작아 12개 이상은 품기 힘든데, 욕심도 많은지 18개를 안고 있었네요. 다음날 먹이와 물을 공급한 후 병아리를 보며 멍때리고 있는데 어미닭의 걸음걸이가 비틀비틀 이상합니다. 꼭 무릎관절 통증이 심한 할머니처럼 안타깝게 이동합니다. 다음 날 동틀 무렵 늙은 어미닭이 걱정되어 닭장으로 가보니 어미닭은 옆으로 쓰러져있는데 병아리는 모두 품 속에서 머리만 내밀고 있습니다. 그날 밤 다시 전등을 들고 닭장으로 가서 확인하니 어미닭이 억지로 몸을 일으켜 병아리 모두를 따뜻하게 안아 밤을 새우고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병아리는 늙은 어미가 아픈 줄도 모르고 천방지축 뛰어다니고, 어미닭은 등을 바닥에 붙었고 다리는 하늘로 힘없이 향하고 있습니다. 곧 죽겠구나 싶어 어미닭을 들어내고 병아리들의 추위를 막아주려 전열등을 설치하는데, 어미닭은 땅에 등을 붙이고서도 병아리가 걱정되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또렷하게 쳐다보고 있습니다. 병아리와 헤어지기 싫어하는 어미닭의 간절한 심정으로 보여, 다시 어미닭을 병아리와 함께 있도록 했지만 이튿날 늙은 어미닭은 차갑게 식어 있었습니다.
작고 느린 삶/ 어미닭 이야기
2025년 10월 / 51호
독자기고
평사리 최참판댁 주차장 입구에 꽤 높은 바위가 세워져 있다. 정면에 ‘박경리土地文學碑’가위에서 아래로 음각되어 있고, 뒤에는 2001.11 평사리를 다녀와서 박경리’라는 글과 함께 그 아래 ‘박경리 연보’가 새겨져 있다. 그리고 측면에 이 비를 세운 내력을 새겼는데 ‘2008.10 하동군민의 뜻을 모아 악양면민이 세우다. 악양면토지문학비 건립추진위원회’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니까 박경리 선생이 돌아가신 그해 몇 달 뒤 바로 이 비를 세운 셈이다. 참으로 발 빠른 추모정신이 가상하지만, 비 앞에 서면 고개를 웬만큼 젖히지 않고서는 다 볼 수도 없는 엄청난 돌덩어리. 과연 이런 거석이 선생의 행적과 소설 『토지』를 올바르게 기린다고 볼 수 있을까, 혼자 생각해 본다.
내가 듣기로, 2004년 이곳 평사리에 건립한 문학관을 두고도 박경리 선생은 오히려 자기 때문에 지리산 자락이 손상되었다고 미안해하셨다고 했다. 또, 이 문학비가 건립되었을 때도 선생의 유족이나 지인들은 선생의 품성을 헤아려 문학비 건립을 꺼려했다고도 들었다.
박경리와 선돌
2025년 10월 / 51호
독자기고
작고 느린 삶을 살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주 작은 습관 중에 어느 하나는 작고 느린 삶에 어울리는 것이 있지 않을까 하여, 오래도록 정리하지 않은 가방을 뒤지듯 삶의 구석구석을 살펴보았습니다.
저는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늘 어렵습니다. 그래도 몸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건 상당 부분 커피 때문입니다. 주로 직접 볶은 커피를 내려 마시는데, 벌써 7년 가까이 된 습관입니다. 멸치육수를 낼 때 사용하는 커다란 스테인리스 망을 이용하여 만든 로스팅 기계에 휴대용 버너를 이용하여 원두를 만들어 냅니다. 한 번에 만들어 낼 수 있는 원두의 양이 많지 않아, 일주일에 한 번은 로스팅하게 됩니다.

스테인리스 망으로 직접 제작한 로스팅 기계로 원두를 볶는다.
원두가 되기 전의 커피콩을 ‘생두’라고 하는데, 이 생두를 볶는 일에도 긴 호흡이 필요합니다. 먼저 필요한 생두를 사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하고 주문을 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볶아야 합니다. 집안에서 볶았다간 집안에 커피 구름이 둥둥 떠다니기에, 집 밖에서 하는 일로 분류를 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롭습니다. 여름에는 더위와 함께, 겨울에는 추위와 함께 커피를 볶아 냅니다. 계절마다 바뀌는 새소리와 커피콩이 스테인리스스틸 망을 때리며 내는 소리의 조화가 묘하게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시간을 만들어 냅니다.
[작고 느린 삶] 긴 호흡이 담긴 커피
2025년 9월 / 50호
독자기고
‘숲과 나무, 길 이야기’ 3

마을 분들이 느티나무 아래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몇 년 전,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그의 병문안을 가는 길에 그 나무를 보았다. 마음이 무거웠던 나는 그곳에서 잠시 쉬어갔다. 나무의 너른 품에 몇백 년은 됐으리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수령 130여 년이었다. 이 나무는 북천면 남포마을 버스 정류소 근처에 있다. 도로가여서 누구라도 지나가다 쉬어가기 좋은 장소다. 그 나무 그늘에 있으면 굳이 에어컨 켠 실내에 들어가고 싶지 않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좋은 건 나무의 이력을 마을 사람들이 훤히 아는 거였다. 나무를 심은 사람은 이명식이라는 분이었고 이병주 소설가의 친척이었다. 나무 앞에는 최증수 시인의 ‘내고향 남포마을’이라는 시비가 있었다. “산 좋고 물 맑아 삼재 모르니 살림살이 탁탁하고, 순박하고 어진 마음으로 함께 즐기는 신나는 마을” 남포마을 느티나무 그늘 아래 쉬고 있는 어르신 다섯 분을 만났다.
북천면 남포마을 느티나무
2025년 9월 / 50호
독자기고
조선원
-악양면 주민
봄비는 퍼붓고 똥이 마려울 때 잠시 수세식 변기의 유혹을 받는다. 하지만 우산 들고 퇴비간에 앉아 엉덩이로 튀는 빗방울을 감내하면 뿌듯하다. 나의 퇴비간 생활은 2010년 귀농하며 시작됐다. 농사의 근본은 퇴비의 자급이라 생각했던 귀농학교 시절의 다짐도 있었지만, 어릴 적 보았던 아버지의 두엄간이 시초다.
아버지의 두엄간은 가을에 시작된다. 낙엽들과 외양간, 돼지우리, 닭장에서 나온 짐승들의 배설물이 주요 재료다. 가을걷이에서 나온 콩대, 고구마 줄기, 볏짚은 소의 여물에 쓰인다. 겨우내 짐승들의 공간에서 나온 똥오줌은 눈과 찬바람 속에서도 따스한 날이면 숙성되느라 김이 나곤 했다. 아지랑이 피는 봄이 오면 두엄간에서도 아지랑이가 올라온다. 숙성되면서 나는 시큼쿵큼한 냄새와 함께. 아버지와 머슴 아재의 큰일이 봄날 두엄을 뒤섞는 일이다. 호구라는 농기구를 사용해 두엄을 섞을 때면, 쌀쌀한 3월인데도 두 분이 땀을 많이 흘렸던 기억이 난다. 그때 맡았던 그 오묘한 냄새가 아직도 코끝에 선명한데 말로 하기는 어렵다. 서너 번의 뒤집기를 거친 두엄은 드디어 들로 나간다. 두엄은 논의 흐드러진 자운영 꽃에 부어져 써레질할 때까지 한 달 여의 2차 숙성기를 갖는다.
나는 어린 마음에 자운영꽂에 부어지던 두엄이 싫었다. 발목까지 물이 찬 자운영꽃이 핀 논에서 오후 햇살을 등에 지고 노는 즐거움을 더는 할 수 없었기에... 아버지의 두엄간이 가을에 시작해 봄에 흙으로 가는 짧은 순환이 가능했던 건 마른 낙엽과 짐승들 똥오줌과 바닥에 깔아줬던 볏짚이 잘 버무려져 두엄간에 갔고, 사람 똥도 그 때는 순수물질이었기에 짧은 숙성이 가능했던 것 같다. 또 하나 음식물 찌꺼기는 돼지나 닭의 먹이여서 두엄간의 재료들이 단순했었다.

퇴비간: 3년을 발효하면 커피가루 같은 흙이 만들어 진다. 제대로 발효되면 향기도 난다.
나의 퇴비간으로 오자. 나의 퇴비간 주기는 3년. 똥, 생풀, 음식물 쓰레기가 커피 찌꺼기처럼 고와지는데 걸리는 시간이 3년. 1년에 한 무더기를 쌓고 다음 해 옆에 또 한 무더기를 쌓으면 된다. 그렇게 세 무더기를 돌아가며 퇴비를 만든다. 처음엔 나무판으로 공간 구분을 했지만 금방 썩어버렸다. 이런저런 공간 나눔의 시도를 하다 요즘엔 적당하게 세 개의 퇴비더미를 나란히 쓴다. 퇴비간을 본 이웃들의 반응은 크기가 작다는 것.
두 식구라 들어가는 양도 적지만 퇴비간에 들어가는 조건도 까다롭다. 가능한 한 빨리 분해되게 똥도 납작하게 눌러 넣고 수박 껍질 등 분해가 오래 걸리는 것들은 아주 잘게 썰어 넣는다. 바나나, 오렌지 등은 바짝 말려 쓰레기 봉지로. 3년 후 나오는 양은 페인트통 크기로 5~6통. 양이 부족하지만 재와 오줌이 열일하니 족하다.
[작고 느린 삶] 슬기로운 퇴비간 생활
2025년 8월 / 49호
독자기고
공기가 지금보다 훨씬 가볍던 세 달 전 어느 날, 바람의 간지러운 리듬에 맞춰 반찬모임에서 야채를 총총 썰고 있었다. 그 날의 이야기재료로 어린이가 턱하니 올라왔다. “도시에 살 때는 별 고민이 없었는데, 여기 오니까 다른 애들이 눈에 밟히더라. 어린이날에 어디서 뭐하고 있을지 뻔히 보이니까...” 면 단위에 사는 어린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셔틀버스를 타고 돌아가야만 한다. 그리고 줄곧 집에 있다. 혼자 있거나, 할머니와 있거나, 형제들과 있거나. 유일한 재미는 핸드폰 세상이다. “음... 그럼 우리 애들이랑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그런데 그냥 가면 재미없으니까, 걸어서! 또 우리가 지리산을 끼고 산다 아이가~” 그렇게 어른이 넷은 바로 다음 날 둘레길을 걸었다. 적량면에서 하동읍으로 넘어가는 고개의 이름은 바람재였고, 초대장의 이름은 <바람재 넘어 피자>로 정해졌다.

초대장
피자가 그려진 초대장이 적량초등학교에 바람보다 빠르게 퍼졌다. 일주일 뒤, 초대에 응한 아이들이 모두 시간에 맞춰 운동장에 모였다. “모두 준비물은 챙겨왔나요?” 여덟 명의 어린이들은 가방에서 물통과 손수건을 꺼내보였고, 어른들은 보자기에 꽁꽁 싸온 비밀의 간식을 선보였다. 각자 들 수 있는 것들을 나눠 담아 산으로 출발했다.
바람재 넘어 피자
2025년 8월 / 49호
독자기고

아시다시피 소설 『토지』는 전체 5부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1부는 1897년 한가위 날을 시작으로 1908년 그러니까 서희가 16살이 되던 해에 평사리 사람들이 간도로 이주하기까지의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당시 이미 일본의 조선 내정 간섭이나 외교권 강탈 등으로 민족의 자주성이 허물어져 있었습니다. 평사리 마을의 상황도 시대의 혼란을 피할 수 없었지요. 조선이라는 봉건시대에서 대한제국의 근대사회로 넘어가는 전환기 격동이었습니다.
떠나는 사람들 -어울렁더울렁 2
2025년 7월 / 48호
독자기고
봄철 농번기가 지나고 장마가 시작된다. 장마 오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양파와 마늘 그리고 감자를 수확해야 한다. 밭이 육백 평 정도되지만 실제로 활용하는 것은 이백 평 정도다. 풀 관리가 제일 어렵다. 오직 호미로만 농사를 한다. 무경운·무농약·무비료를 고집하다 보니 일하기 좋은 곳에서만 경작한다.

농촌으로 오면서 쌀과 생선을 제외하고는 가능하면 우리가 먹는 식재료는 자급하려고 마음 먹었다. 처음엔 욕심내서 모든 채소와 곡물을 심었지만 제대로 수확하기가 쉽지 않았다. 봄철 모종 가게에서 파는 것을 호기심으로 종류별로 심어 보았지만 약을 안 치고는 제 모양의 작물을 키워내기 어려웠다. 그래서 크게 농사 기술이 없어도 잘 자라고 잘 기를 수 있는 작물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적은 재료로 다양하게 조리해서 먹는 고민을 한다.
십 년 정도 지나면서 정성을 들이는 작물은 부추, 양파, 마늘. 감자, 옥수수, 강낭콩, 방아, 대파, 쪽파, 들깨, 알타리, 배추, 무, 갓, 오이, 토마토 등 으로 계절별로 혼작과 섞어짓기를 작물 특성을 고려하며 키운다. 그러면 풀 관리도 수월하고 적은 면적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지혜가 생겼다. 예를 들면 겨울에 심은 양파와 마늘밭에 중간중간 감자를 심는다. 양파 수확 할 때쯤 감자가 무성하게 자라 풀이 덜 난다. 냉해 피해도 방지 되는 듯하다.
자급자족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들과 산에나는 푸성귀들인데, 음식 재료로 많이 활용한다. 시금치 대신 망초로 나물과 국거리로 하고 독성이 약한 냉이, 보리뱅이. 지칭개. 씀바귀, 머위는 소중한 식재료다. 가능하면 살짝 맛보고 웬만한 들풀은 먹으려고 한다. 이른 봄 대부분 어린 싹들은 맛있는 샐러드 재료가 된다. 환삼덩쿨, 돌나물, 명아주, 광대나물, 봄까치꽃 등 눈을 잘 마주치면 먹을 것이 지천이다. 애써 가꾸지 않아도 얻는 게 참 많다. 소농으로도 풍성한 자연 재료를 활용하면 자급경제에 도움을 많이 받는다.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감자를 수확하고 있는 김옥랑 씨
자급경제를 위한 소농 일기 / { 작고 느린 삶 }
2025년 7월 / 48호
독자기고
깨진 그릇, 구멍 난 옷, 낡은 집을 고쳐 쓰듯이 사람도 고쳐 쓸 수 있을까요? 사람도 고쳐 쓸 수 있다면 고쳐야 할 ‘사람’이자 고치는 행위를 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리고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요?
앞서 쓴 세 편의 글과 달리 이번 글은 높임표현을 써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릇이나 옷, 집은 그럭저럭 재미삼아 고쳐 써도 큰 문제가 없지만 사람은 대충, 그럭저럭 해서는 고쳐지지 않고 제대로 고치지 않으면 진정한 행복으로 나아가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저도 알아가는 중이기 때문에 자세는 낮추고 말은 높여 봅니다.

집도 사람도 고쳐가며 적량면에 살고있습니다.
사람도 고쳐 쓸 수 있다면 고쳐야 할 ‘사람’이자 고치는 행위를 하는 ‘사람’은 바로 접니다. 무언가를 고친다는 것은 고장 난 것,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제대로 되게 하는 것이고 바르게 고침으로써 본래의 목적에 맞게, 주어진 쓰임을 다 할 때까지 사용하기 위한 행위라 생각합니다. 물건이나 집을 고치는 것을 ‘수선’이라 한다면 사람을 고치는 것은 ‘수행’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사람도 고쳐 쓸 수 있을까? / 고쳐 쓰는 생활 ➃
2025년 7월 / 48호
독자기고
샤워를 하면 물이 하수구로 빠져나가지 않고 욕실 바닥에 고인다. 샤워가 끝나면 물긁개로 바닥을 긁어 고여 있는 물을 하수구로 보내야 하는 우리 집 욕실. ‘대충건설’이 고쳤기 때문이다.
“대충해~~.” 할 때의 그 대충이 맞다. 남편은 클 대(大)자에 충성 충(忠)자를 쓴 거라 농담을 얹지만 욕실 바닥에 고인 물을 보면 대충하는 건설이 확실하다. 대충건설은 우리 부모님과 남편과 나, 네 명이 한 팀인 가상의 건설회사다. 꼼꼼하게 정석대로 하기보단 대충 상황에 맞게 해서, ‘대충건설’이다.

공구를 사용하다보면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듭니다. 생활의 기술을 익혀가는 중!
남편과 내가 함께 살았던 첫 집은 경주의 오래된 한옥. 보일러도 없는 한옥에서 난로와 침낭에 의지하며 살다 민박을 하려고 대충건설이 직접 고쳤다. 두 사람의 첫 집이라는 생각에 집을 수리할 때면 자재상보다 고물상에 더 자주 들락거리셨던 아빠와 달리 나는 새 자재를 신나게 ‘쇼핑’하며 집을 수리했다. 살면서 손봐야 할 곳이 많았지만 마음에 드는 집이 완성되었다. 우리의 취향이 잘 드러난 것 같았고 민박을 찾아온 손님들도 좋아해 줘 ‘오~, 꽤나 멋진 집에 살고 있나?’ 라는 생각에 어깨가 으쓱하기도 했다.
고쳐 쓰는 집 / 고쳐 쓰는 생활 ➂
2025년 6월 / 47호
독자기고
환경
두 명의 언니가 생겼다. (시골에 오니까 언니들이 많아진다.) 언니들과는 매주 목요일 아침에 모여 반찬을 만든다. 이 모임의 목적은 일주일간 먹을 반찬을 같이 만들어 나눠 갖는 것이다.
처음 수진(둘째 언니)의 제안에 덥석 응했던 것은 요리하는 근육을 붙이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웬걸. 이거 이거... 효율이 아주 쏠쏠하다. 큼지막한 통 서너 개를 근사한 반찬으로 가득 채워 돌아간다. 쪽파장아찌, 두부쌈장, 달래된장국 키트, 구운 두부조림, 세 가지 나물 무침... 매번 다르게 채워간 반찬통은 매일 ‘뭐 해 먹지?’하는 고민이나 요리하는 시간도 훨~씬 줄여줬다. 각 집의 짝지들 (주로 집수리와 농사일을 하는)은 “와- 반찬 모임 계속 했으면 좋겠다!”라며 어쩜 그리 똑같은 대답을 터뜨렸는데, 언니들과 나는 한쪽 입꼬리만 슬쩍 올리며 피식 웃어주었다.
찬찬희
2025년 5월 / 46호
독자기고

하동문화예술회관 아트갤러리에서 열린 송만규 작가의 초대전 ‘섬진강 서시’
하동문화예술회관 아트갤러리에서 송만규 작가의 초대전이 열리고 있다. 군민의 날을 맞이하여 하동군이 주최하고 악양의 빈산 갤러리가 기획한 전시이다. 작가는 지난 30여 년 동안 섬진강의 줄기를 비롯하여 대한민국과 이북의 강들을 따라 걷고, 그 흐름을 수묵화로 담아오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만경강, 섬진강, 임진강, 두만강뿐만 아니라 우리 하동군의 평사리 들판, 송림 공원, 하동 포구와 긴 섬진강 대숲길을 담아낸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이 전시에서 나는 도슨트를 맡게 되었다. 여러 전시에 관람객으로 방문한 적은 있었지만 그 관람객들에게 전시를 안내하는 도슨트가 되어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전시를 가더라도 도슨트를 통해 작품을 접한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내가 이 일을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한 편으로는 관람객이 작품과 잘 소통하도록 안내하는 일에 호기심이 일었다.
섬진강 서시: 삶과 역사에 대한 예찬
- 송만규 작가 초대전을 보며
2025년 5월 / 46호
독자기고
처음으로 직접 만들어 입은 옷은 광목으로 만든 주름치마였다. 온라인 쇼핑몰을 헤매다 마음에 드는 치마를 발견했는데 ‘이렇게 단순한 치만데, 이렇게 비싸다고?’라고 생각했다. 손으로 만드는 것에 겁이 없던 나는 책을 찾아보며 주름치마 만들기에 도전했다. 왠지 어색하게 만들어진 이 치마를 몇 번인가 입다가 불편해서 잘 입지 않게 되었다. (편안하고 좋은 옷을 만들려면 그만큼 기술이 필요하다는 걸 옷 만들기를 배우며 알았다.) 그 뒤로도 몇 벌인가의 옷을 더 만들었다. 어떤 것은 꽤 그럴싸하게 만들어져 여전히 입고 있기도 한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옷을 더 이상 만들어 입지 않게 되었다. 이미 나의 옷장에 있는 옷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체형이나 취향이 크게 바뀌지 않는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옷으로도 평생 입고 살 수 있다.

되살림 바느질 워크숍에서 각자의 ‘빵구’를 메웁니다.
그때부터는 새 옷을 만드는 바느질 대신 낡은 옷의 쓰임을 되살리는 바느질을 시작했다. 오래 입어 헤진 린넨셔츠, 청소하다 세제가 튀어 색이 바란 티셔츠, 구멍 난 양말, 넘어지며 무릎이 찢어진 바지, 음식을 흘려 얼룩진 테이블보와 화장품 자국이 묻어 지워지지 않는 손님용 침구까지. 여기저기 찢어지거나 오염되어 더 이상 입기 어려워진 옷에서 얻은 조각을 덧대거나 새롭게 직조해 메우고, 꿰매고, 이어 붙였다.
되살림 바느질 / 고쳐 쓰는 생활 ➁
2025년 5월 / 46호
독자기고
박경리의 소설 『토지』의 주인공이 누구일까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서희’라고 답할 것입니다.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하여 여러 사건의 중심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되는 인물이라서 틀린 답은 아닐 것입니다. 게다가 『토지』를 각색한 드라마나 영화 등은 서희 주변의 사건을 전개하는 소설 전반부를 주로 다루었기 때문에 많은 일반인들이 서희를 주인공으로 더욱 여기는 것 같습니다.
민족의 수난이 개인의 시련과 무관하지 않음을 어린 나이부터 오십 대 중반까지 몸소 겪은 그녀, 영민과 비정으로 한 시대의 사슬을 평생 짊어지고 살아온 그녀를 소설의 주인공으로 간주함은 당연합니다만, 그러나 어디 서희뿐이겠습니까. 그 시대를 살아온 모든 깨어있는 사람들, 근대 자본의 제국주의가 식민지 쟁탈전을 앞세우고 세계의 여러 약소국을 무참하게 짓밟던 시대의 사람들, 인간의 희로애락은 감히 드러낼 수조차 없이 그야말로 어처구니없는 폭력과 모순 속에서 단지 목숨만을 처절하게 이어나가던 그 시대의 사람들이 모두 주인공이 아닐까요.
지금 우리 독자들은 그래서 그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설 『토지』를 통해 그저 읽을거리로 책장 넘기듯 경시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역사는 과거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분명히 현재에 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서희다
어미 떠난 별당, 햇살은 따스한데
연못의 물은 점점 얼어만 가고
다섯 살 내 마음의 옹이는 자꾸 딱딱해지고
앞뒤 없이 울어대던 산새 소리
나는 서희다 -어울렁더울렁 1
2025년 4월 / 45호
독자기고

'하동26토지연구회'가 올해 사업으로 '글빚기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가까운 회원끼리 우선 모이지만 글쓰기에 기웃거리는 사람이면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다. 한 달에 두 번 그러니까 2, 4주 화요일 오후 3시, '악양생활문화센터' 2층에 있는 동아리방에서 모인다(물론 시간과 장소는 고정된 게 아니다). 2025년 2월 11일의 첫 모임 이후 지금까지 4번의 수업(?)을 진행했다. 재밌다.
'함께 글쓰기'를 먼저 내세운다. 한 권의 책은 공동저자가 있지만, 한 편의 글은 한 사람의 지은이로 발표되는 게 일반적이다. 왜 꼭 그래야만 하는가? 울타리 두르고 벽을 치고 자기만의 영역이라고 우기는 우리네 삶의 풍경도 무섭고, 한 편의 글이 기어코 한 사람의 소유라고 우기는 관행 또한 애처롭다. 동시대의 시간과 공간, 특히 한 공동체의 문화와 문자 등은 어김없이 공유하며 살아가는데(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왜 우리는 이 각자도생의 시류를 의심하고 일탈하려 애쓰지 않을까? 동네 사람들이 함께 모여 한 채의 집을 짓듯, 글쓰기도 여럿이 모여 한 글자 한 문장을 서로 거들고 마침내 한 편의 글을 완성해 나가는 작업도 흥겹고 즐겁지 않을까? 그러자고 모두 찬성했다. 그래서 모임 이름을 '어울렁더울렁 하동26토지연구회 글빚기 교실'이라 지었다.

어울렁더울렁, 하동26토지연구회 글빚기교실
2025년 4월 / 45호
독자기고


“내가 만들어 줄게.”
학창시절 무언가 필요해 부모님께 사달라고 말하면 아빠가 으레 하던 이야기다. 그게 그렇게 싫었다. 친구들이 다 알 만한 요즘 유행하는 새것이 갖고 싶다는 뜻인데 아빠는 그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뭔가를 자꾸 직접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어떤 건 직접 만들어주시기도, 어떤 건 결국 사기도 했고 어떤 건 포기하기도 했다.)
아빠의 책장에는 <핸드메이드 라이프>와 <자발적 가난>이라는 책이 오래 꽂혀 있었고 내가 아주 어린 아이일 때부터 아빠는 무언가를 직접 만들었다. 오디오와 스피커, 선반과 식탁, 방석과 커튼, 집과 정원. 삶의 어느 시기에 아빠는 천연 염색가였고 목수였고 건축가였다. 아빠는 이웃 예술가들을 모아 ‘손으로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협회를 만들고 마을 예술가들의 작업실을 돌아다니며 전시회를 열었다. 이제 환갑이 훌쩍 넘으신 아빠는 20년차 도예가.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의 아빠는 나보다 고작 서너 살 많은 청년이었고 그때의 아빠와 또래가 된 지금의 나는 무언가를 자꾸 손으로 만드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그릇 수선 깨진 그릇을 되살려 쓴다 / 고쳐쓰는 생활 ①
2025년 4월 / 45호
독자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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